바흐 소설에 대한 경험담 및 원작자에 대한 진위 여부 by Barroco

이 글을 쓰고 있는 Barroco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우연히 집에 있던 국립합창단의 《명성가곡집》 앨범에 나와 있는 헨델의 《메시아》와 하이든의 《천지창조》의 발췌곡들을 접한 뒤 호기심 차원에서 이 두 작품의 전곡을 찾는 과정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극동방송에서도 한번씩 고전 성가 등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 채널인 KBS 1FM도 알게 되어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 방에 라디오를 거의 끼며 살다시피 하였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다시는 영영 못 들을까 봐 공테이프에 녹음하여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곤 하는 열성도 보여왔었다.

지금도 물론 그러하지만 내가 주로 즐겨듣는 음악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들이었다. 물론 초보자였던 학창 시절의 입장에서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듣는 경향을 보이긴 하였지만(또한 그렇게 해야 했었고) 나는 이상하게도 조성 음악에 내 귀가 익숙해져서 그런지 근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을 때마다 내 몸에서는 거부 반응이 마구 일어났었다. 예를 들면 성악가들이 부르기를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푸치니의 오페라를 들으면 뭐랄까 전체적인 분위기가 암울하고 들으면 들을수록 짜증이 나서 라디오 스위치를 과감하게 내리고 싶은 심정인데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 가곡도 이상하게 내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는다.

어쨌거나 슈베르트의 가곡이나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곡들도 좋아했었지만, 나의 재생목록 대부분을 차지한 건 바로크 음악, 그중에서도 비발디, 바흐, 그리고 헨델이었다. 물론 이 세 사람은 차후의 여러 포스트에서도 밝히겠지만, 바로크 시대 말기에 활동했던 작곡가들이라서 이 삼총사만의 음악들을 놓고 바로크 음악의 전부라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1600년경부터 전해 내려온 음악에 대한 관습, 사상, 연주 방식 등 모든 것을 이 세 사람들이 종합적으로 잘 혼합하여 결론을 내려준 것만은 확실하다.

이러한 나이기에 나는 어느 시대보다도 바로크 시대의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이 되면 나는 유독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바로크 시대(그러니까 17, 18세기) 시간에만 눈이 초롱초롱하였고 프리젠테이션 발표도 루터로 정했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 시대들에 관련된 여러 서적들을 읽고 관련 영화도 찾아보며 나름대로 교양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때마침 2000년은 바흐 서거 250주년이 되는 해라서 라디오, 방송 매체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크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여 나는 다양한 바흐의 작품들을 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신문기사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바흐의 두 번째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가 쓴 회고록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닭살이 돋을 정도라니 얼마나 그녀가 글을 잘 썼길래, 얼마나 바흐의 인간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기에 그렇겠나 싶어 나는 아버지께 생일 선물로 졸라 이 책을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다, 그리고 책이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아마 이 책이 지금까지 보관해온 책들 중에서 가장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 읽고 나서 보니 좀 격양되고 지나치다 싶은 장면들도 여럿 보이긴 했지만 그의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진짜 한 사람으로서의 바흐를 느낄 수가 있게 되어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렇게 해서 굳어져버린 나의 고정관념이 사르르~ 무너지는 계기가 생기게 되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이 책은 실화가 아닌 허구라는 사실이었다. 『내 남편 바흐』가 출간된 뒤 어느 독자분께서 이와 똑같은 소설이 이미 번역 출간되었다고 문의를 하셨고, 우물이 있는 집에서 확인 결과 씽크북에서 나온 소설 『나의 사랑 바흐』와 백 퍼센트 일치하다는 점을 발견하여 뒤늦게 부랴부랴 사과문을 올렸던 것이다. 출판사 측에서는 본문에서 일본어로 되어 있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지은이를 안나 막달레나 바흐로 넣어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송구스럽다고 하였다. 이 책이 바흐의 전부를 말해주는 줄만 알았기 때문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좀 더 자세한 정황을 알아보기 위하여 이 Barroco가 리서치를 해 본 결과, 원본은 독일어이며 일본에서 1997년 『바흐의 추억』 (バッハの思い出)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최대의 출판사인 고단사에서 발행되었다. (고단사는 만화책만 내는 줄 알았는데 이런 학술지도 발간하는군.) "안나 막달레나 바흐/야마시타 하지메 옮김"이라고 적힌 이 판권에 한국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자 고단사 측은 작년, 그러니까 2001년에서야 다른 저자가 있음을 뒤늦게 알게되어 옮긴이와 상의 중이라고 답신이 왔다고 한다.

암튼 이렇게 일이 커지게 된 것은 사실 원래 저자인 에스터 메이넬의 실수가 큰데 그녀는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채 이 책을 무명으로 1930년 세상에 내놓았는데 예상 밖으로 책이 유명해지고 독일어로까지 변역이 되자 부랴부랴 자신이 저자라고 밝혔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도쿄대 명예교수인 하지메는 지은이가 안나로 되어 있는 독일어본을 일본어로 그대로 번역하였고 『내 남편 바흐』도 이 일본어 판권을 고단사 동의 없이 그대로 옮겼던 것이다. 그리고 몇몇 기자들은 이걸 바흐의 아내가 쓴 책이라며 대대적인 선전을 하였는데 한일 양국의 출판사와 신문사로서는 이런 망신도 아닐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알만한 사람은 안다, 바흐 (부부)는 몇몇 편지나 서신 등만 남겼지 회고록이나 자서전 등은 일절 남기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렸던 나는 이러한 사실조차 몰랐었다.

이쯤 되면 출판사에 항의해서 책을 교환 또는 환불받았을 법도 한데 나는 그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록 소설이라고 해도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좀 더 인간적인 바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접할 때마다 어렵게만 느껴졌었는데 막상 배우자의 시각으로 그의 생애를 이해하고 나니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기도하였으며 또 수고하였겠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컬러 화보가 짧은 설명과 함께 무려 16페이지나 된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후 대학 도서관에서 『나의 사랑 바흐』를 발견하여 읽어 보았는데 이쪽이 문학적 표현이 더 좋다는 어느 평과는 달리 『내 남편 바흐』에 길들어져 있는 상황에서 후자가 소설로서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게다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바흐로 연기한 영화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 (Chronik der Anna Magdalena Bach)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여서 이 영화 또한 어렵사리 구해 여러 번 보았지만 다큐멘터리 식의 어느 특정 기간 동안의 전개와 연주 영상만 나올 뿐이지 구체적으로 안나가 이야기하는 바흐의 어린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전반적인 일생에 관해서는 이야기로만 그치고 실질적으로는 소설의 전개대로 보여주지 않아서 많은 아쉬움을 주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님을 나는 이 책을 통하여 깨달았다. (비록 에스터 메이넬이 스피타의 전기를 토대로 작성했다 하더라도) 이처럼 잘못된 방법으로 바흐의 생애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어서 이걸 수습(?)하느라 이후 검증된 바흐에 관한 여러 서적들을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소설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그 당시 시대 배경이나 상황 등도 잘 묘사되어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결론은 바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이 책 혹은
『나의 사랑 바흐』는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곡이 탄생하게 된 에피소드, 소소한 일상,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음악가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과 아내에 대한 사랑 등을 느끼고 싶다면 좋은 참고와 안내서가 될 것이다. 근데 아무리 바흐가 위대하다고는 하지만 내 남편은 완벽하다며 너무 띄워주는 분위기여서 기자가 말한 대로 닭살까지는 돋지 않았어도 작가가 뭔가 우상화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찌되었건 마지막으로, 『내 남편 바흐』의 목차를 공개하고자 한다.


Ⅰ. 만남과 결혼
“막달레나 양! 당신은 이제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부모님께서는 결혼을 허락해 주셨지만, 내 아내가 되어 주겠소?”


Ⅱ. 결혼 전
소년 시절의 제바스티안은 아주 멋진 소프라노 목소리를 가진 소년(boy soprano)이었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웠던 소리의 울림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Ⅲ. 신혼
나는 오르간을 연습하다 소리쳤습니다. “더 이상은 못해요. 못하겠다구요.” 제바스티안은 말했습니다. “바보 같으니라구! 여기가 교회만 아니라면 당신에게 키스해 주었을 텐데!”



Ⅳ. 라이프치히
“오랜 세월동안 당신의 금발은 나에게 태양의 빛이었으나, 이제 당신의 은발은 나의 달빛이라오. 정말 우리 같은 연인들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빛이 아니겠소!”



Ⅴ. 만년
긴 세월동안 요람을 비워둘 새가 없을 정도로 가족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운 죽음의 손길이 작은 요람 속의 주인공들을 몇 번이나 슬며시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Ⅵ. 그의 음악
“지금 사람들의 귀에는 나의 음악이 잘 들리지 않을 거요. 그러나언젠가는 그들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



Ⅶ. 죽음
하루는 그를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막달레나! 내 눈이 보이는 동안은 계속 써야 하오.”하고 대답하고는 가는 눈을 껌벅이며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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